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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

마녀 배달부 키키 - 검정 원피스에 빨간 리본

by 순간_ 2020. 3. 3.

일본 특유의 잔잔한 생활 감성을 좋아하는 사람들이 있다.

나는 유독 그 생활 감성을 
스튜디오 지브리의 영화들에서 찾곤 한다.
지브리 영화에는 
영원히 잃고 싶지 않는 그들만의 색깔이 존재하기 때문이다.

모두의 마음 속 한편에 자리 잡고 있을
작고 조용한 마을 속 사람들의 이야기.

 

오늘은 영화 "마녀 배달부 키키"를 보았다.

 

검정 민무늬 원피스에, 빨간 리본.
어둠 속에서는 눈만 반짝거릴 것 같은 까만 고양이 지지와
빗자루 한 개.
꼬마마녀 키키는 항상 이런 모습이다.

키키는 떠난다.
자신이 살아온 마을을 떠나, 진정한 마녀로 성장하기 위해
바다가 보이는 커다란 마을로 떠난다.
그리고 이 마을에서는
조용하고도 평화롭지만 조금은 시끌벅적한 일들이 벌어진다.

 

이 영화는 지브리 영화들 중에서도 
유독 잔잔하고 별다른 사건이나 갈등 요소가 없다는게 특징이다.
특이한 점이라면 마녀라는 설정이 존재하는 세계관 정도.
이를 제외하면 한 어린소녀의 성장 이야기가 전부다.

하지만 여기서 가장 중요한 포인트가 바로 "마녀"다.
우리가 기존에 알고 있던 마녀의 개념을 살짝 비틀어 본 것.
어둠 속에서 매일같이 사람들을 피해 다니는 그런 마녀가 아닌, 
구름 한점 없는 파란 하늘을
빗자루 하나로 누비고 다니는 열한 살의 꼬마 마녀로 말이다.
마녀라는 설정이 주가 되지만
그것이 아니어도 모두가 공감할 수 있는 이야기가 된 건
영화 전반에 평범한 우리들의 모습이 담겨있기 때문이다.

 

바다가 보이는 항구마을에서 살게 된 키키는
다양한 사람들과 함께한다.
자기 또래의 친구 톰보와 흔쾌히 방을 내준 빵집 아주머니. 
숲 속에 살고 있는 우르술라와
자신에게 배달 서비스를 맡겨준 마을 사람들까지.

현실에는 존재하지 않을 정도로
때 묻지 않은 순수한 모습의 인물들.
너무 일차원적이라 느껴질 수도 있지만
그저 한결같이 따듯한 어른들이 있었기에 
어린 키키의 이야기가 완성된 게 아닐까.

 

낯선 곳이었음에도
키키는 이 마을이 그저 좋다고 한다.
손꼽아 기대하던 바다가 보이는 마을이었기 때문일까?
키키처럼
우리에게도 그냥 아무 이유 없이 
계속 좋아할 수 있는 무언가가 하나쯤은 있었으면 한다.

누군가 딴지를 걸어도,
당장 때려치고 싶은 것들 투성이더라도.
그냥 좋아서, 
좋아서 어쩔 수 없다 생각하는 그 마음이 사라지지 않았으면 한다.
그래야 우리의 삶이
조금의 낭만과 영화 속 따듯함이 남아있게 될테니까.

 

마지막 장면에서 키키는 마녀의 힘이 돌아왔음에도 불구하고
더 이상 고양이 지지의 목소리를 듣지 못한다.

그저 '야옹-"에 그치는 지지와의 대화.
지지와 키키의 케미를 무척 좋아했던 나로서는
아쉬움을 감출 수 없었지만
감독은, 키키가 성장하면서 더 이상 고양이의 말을 알아들을 수 없게 된 거라 말했다.
마치 토토로가 아이들의 눈에만 보였던 것처럼 말이다.

지브리에는
누군가의 눈에는 보이고 

누군가에게는 보이지 않는 설정이 항상 녹아들어 있다.

그리고 영화를 통해 이를 엿보는 우리들은
스스로가 조금은 특별한 존재가 된 것 같은 느낌을 받는다.

이 설정이 지브리가 추구하고 있는 
동화 같은 비밀스러움이 아닐까 생각한다.
그리고 이것이, 

내가 아직도 아무 설명 없이
지브리 영화를 좋아한다고 당당히 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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